본문 바로가기

[저장강박증2] 정리 못하는 게 아니라, 버릴 수 없는 마음

📑 목차

    정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버릴 수 없는 마음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저장 강박증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입니다. ‘버릴 수 없음’의 심리적 이유를 분석합니다.

     

    정리 못하는 게 아니라, 버릴 수 없는 마음
    “당신은 정리를 못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마음이 아플 뿐이에요.”


    서론: 정리의 기술이 아닌 마음의 문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정리 능력이 아니라 버릴 수 없는 마음이다.

    저장 강박증(hoarding disorder)을 가진 사람들은 물건을 ‘정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정리는 손의 움직임이지만, 버림은 마음의 결정이다.
    따라서 감정이 얽혀 있는 물건 앞에서 정리는 기술이 아닌 감정 조절의 문제가 된다.

    정리의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치워도 다시 쌓인다.
    즉, 저장 강박증은 ‘정리하지 못함’의 문제가 아니라 ‘정리해야 한다는 불안을 견디지 못함’의 문제다.


    1. 버릴 수 없는 이유 — 상실에 대한 두려움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한다.
    물건을 버리는 행위는 그들에게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무언가를 잃는’ 경험처럼 느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적 대상 동일시’라고 부른다.
    즉, 어떤 물건이 나의 기억·관계·정체성을 상징하게 될 때, 그 물건을 버리는 건 나 자신을 일부 잃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이건 엄마가 사준 옷이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엄마와의 관계’가 된다.
    그래서 저장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은 물건을 버릴 때 죄책감과 상실감을 동시에 느낀다.

    결국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이다.


    2. 정리 못하는 게 아니라 ‘판단이 어려운 것’

    저장 강박증 환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건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어요.”
    “아까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이처럼 모든 물건에 가치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가 특징이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결정 회피(decision avoidance)’이며, 불안 회피 성향과 관련이 깊다.
    무엇을 버릴지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질수록, 사람은 불안해진다.
    그래서 차라리 “그냥 다 놔두자”라고 결론 내린다.

    이때의 판단 마비는 감정의 개입 때문이다.
    물건 하나하나가 “추억”, “의미”, “기억”으로 연결되면
    이성적으로 ‘쓸모없음’을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정리하지 못하는 건 능력이 아니라 감정적 과부하의 결과다.


    3. 정리의 실패가 아니라, 감정의 미해결

    저장 강박증은 종종 우울이나 불안장애와 함께 나타난다.
    정리하려 할 때, 사람은 물건뿐 아니라 그 물건에 얽힌 감정과도 마주하게 된다.
    그 감정이 아직 소화되지 않았을 때, 정리는 고통이 된다.

    예를 들어, 전 애인이 준 편지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편지 자체보다 그 관계가 아직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정리하지 못하는 건 미정리된 감정 때문이다.

    정리의 과정은 곧 감정의 정화(catharsis) 과정이다.
    그래서 심리치료에서는 정리를 강요하기보다,
    “왜 그 물건을 버리기 어려운지”를 묻는 내면 탐색을 먼저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저장 강박증의 본질적인 원인—감정적 미해결—을 다룬다.


    4. 버림은 자기 부정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물건을 버리면 “그 시절의 나를 부정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장 강박증의 회복은 ‘자기 부정’이 아니라 **‘자기 통합(self-integration)’**이다.
    버림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절을 마음속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즉, “이건 이제 내 안에 충분히 자리 잡았으니, 물리적 형태로는 놓아도 된다”는 감정적 수용이 일어날 때
    비로소 비움이 가능해진다.

    버림은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저장 강박증 회복을 “심리적 재구성의 과정”이라고 부른다.


    5. 버릴 수 없는 마음을 치유하는 작은 실천들

    저장 강박증의 치유는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행동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모든 걸 버릴 필요는 없다.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이 유용하다.

    1. 작게 시작하기
    — 서랍 하나, 파일 한 묶음처럼 작은 영역부터 시작한다.
    작은 성공 경험이 불안을 줄인다.

    2. 사진으로 남기기
    — 감정이 담긴 물건은 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둔다.
    물건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3. 감정 기록하기
    — “왜 이걸 버리기 힘들까?”를 글로 적어보자.
    감정을 언어화하면 무게가 줄어든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자기 이해의 과정이다.


    결론: 정리 못하는 게 아니라, 아직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을 뿐

    저장 강박증은 게으름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불안을 다루는 하나의 방식이다.
    정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아직 버릴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움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준비가 되었을 때, 비움은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그러니 자신을 비난하지 말자.
    정리의 첫걸음은 ‘이해’다.
    “나는 왜 이걸 버리기 힘들까?”를 묻는 순간, 이미 회복은 시작된다.